http://www.binghamton.edu/fbc/206e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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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은 다음 차례인가?
(Immanuel Wallerstein, "Is Afghanistan Next?", April 1, 2007)
모든 사람들이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서 진 것을 안다. 오늘날 워싱턴 DC의 정치는 간단히 공화당과 민주당 간의 책략들의 연속이다. 민주당은 다른 당이 큰 실수의 대가를 치루게 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위치시킨다. 아프가니스탄이 다음의 패배가 될 것인가? 6년전,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국이 소련과 같은 패배를 겪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는 옳았는가?
2001년 9월 11일 이후, 미국(그리고 영국)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의 정권 변화를 목표로 설정했다. - 우리가 지금 아는 결정은 이미 미국에 의해서 9/11의 두 달 전인 2001년 7월에 시행되었다. 주된 공중의 논쟁은 그 정권이 알-카에다의 리더들과 훈련 캠프를 숨겨줬다는 것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9월 21일에 탈리반 정권에 최후통첩(ultimatum)을 보냈고, 그들은 거절했다. 그리고 10월 7일 미-영 연합군은 들어갔다.
그때, 거의 전세계가 침략자의 편이었다. 탈리반은 끔찍하고 위협적인 레짐의 바로 그 모델이었다. 그들은 단지 알-카에다를 숨겨줬을 뿐 아니라 그들은 무슬림 샤리아 법의 극단적인 버전을 실시했고 그리고 특히 여성들을 차별 - 그들의 직업, 교육, 일가 성인 남성과 동행하거나 넓은 부르카(burka)로 덮일 때를 제외하고 집을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거절하는 것으로 - 했다. 그래서 미국이 침략했을때, 세계의 대다수는 박수를 보냈다. - 단순히 미국의 서쪽 동맹들 뿐만 아니라 기억하기론 러시아나 이란도 그랬다. 거의 유일한 저항은 이란에서 있었다.
물론 이러한 반응들은 놀랄 것이 아니었다. 러시아는 오랫동안 북쪽 동맹이라 불리우는 반-탈리반 그룹을 지원해왔고 그 그룹은 탈리반 세력의 기반이 되는 다수 Pashtun과 는 다른 소수 민족 그룹들로 구성되었다. 이란도 유사하게 오랬동안 그들과 민족적 끈이 있는 반-탈리반 그룹을 지원해왔다. 파키스탄의 경우, 탈리반은 그들의 피후견인이었고 파키스탄 정보부(ISI)는 탈리반의 주요한 지원자였다. 탈리반을 권력에서 몰아내는 것은 파키스탄이 자신의 영향력의 권역(인도가 서둘러 돌질하려는 빈 공간)에서 제외되는 것을 의미했다.
2001년 이래로 무엇이 일어났는지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최소한 30년 전의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 19세기의 아프가니스탄은 러시아와 영국이 경쟁하는 지역이었다. 1945년 이후의 기간에는 소련과 미국이 경합하는 지역이 되었다. 1978년에 아프가니스탄 인민당(PDPA)은 모스크바의 요청에 대항하는 정부를 전복했다. PDPA가 두 개의 강경히 경쟁하는 (민족에 따라 나뉜) 분파로 구성되었기에, 소련이 빠져나간 곳에서 공산주의자 간의 내적 다툼의 기간이 뒤따랐다. 결국 1978년 12월에 소련군은 이 상황을 안정화시키기 위해서 들어갔다.
수년 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이 "베트남"이 될 것을 예상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을 끌어내기 위해서 모든 것을 했다는 것을 밝혔다. 그동안 미국(그리고 파키스탄)은 공산주의 정권의 전복을 추구하는 이슬람 무자히딘(mujahidin)의 훈련과 무장을 매우 활발하게 지원했다.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국이 지원한 군사적 훈련을 받은 사람들 중의 한 명이었다. 공산주의 정권은 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최소한 그 정권은 세속적이었고 여성에게 매우 확장된 권리를 제공했다. 다음의 정권들에서는 어느 쪽도 진실이 아니었다.
소련의 침략은 소련에게 베트남과 유사한 경험이 된 것으로 드러났다. 인명, 돈 그리고 본국에서의 인기가 손실되었고, 고르바초프 휘하에서 그들은 철수를 시작했다. 그러나 시민 투쟁은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더욱 확대되었다. 지금은 카불에서 자신들의 권력을 수립하려는 전-무자히딘의 경쟁 그룹들이 있다.
허약해지고 해를 끼치는 시민 전쟁의 수 년 뒤, 파키스탄 군대의 지원에 의한 탈리반이라 불리는 "학생들" 그룹이 확립되어있던 일종의 질서를 널리 구조하기 위해서 나라를 휩쓸었고 카불을 점령했다. 그러나 곧 탈리반이 확립했던 "질서"는 사람들의 취향이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Pashtun은 가장 큰 민족 집단이었으나 어떤 의미에서도 단 하나의 중요한 집단은 아니었다. 그리고 다른 집단들은 배제되었다고 느꼈다. 거기다 아프가니스탄의 고고학적 신비 중 하나인 두개의 거대한 부처상을 파괴하는 것을 포함해서, 탈리반은 점점 더 과격하게 이슬람주의자가 되었다. 그리고 탈리반의 리더인 물라 오마르는 오사마 빈 라덴과 친밀한 관계를 확립했다. 여기서 2001년 미국의 침략이 유래한다.
이점에서, 탈리반이 내쫓았었던 경쟁하는 집단들이 돌아왔다. 그리고 시초에, 새로운 질서가 미국의 군사적 지원과 국제연합의 외교적 개입과 함께 확립되었다. 하미드 카르자이 치하의 국민 정부가 만들어졌고, 권위를 확립했다. 카불에서, 나머지 국가에서는 실제로 그렇지 않았다. 질서는 다시 한 번 악화되었고 2003년에 파키스탄의 암묵적 용인(tacit tolerance)에 탈리반의 군사적 부활은 시작했다.
미국이 지금 이라크에서 얽혀있으므로, NATO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2006년 1월에 안보는 영국, 캐나다, 네덜란드, 덴마크, 호주, 에스토니아, 노르웨이, 프랑스, 이태리, 뉴질랜드와 같은 많은 수의 나라에서 부대들인 NATO 국제 안보 지원군(NISAF)에 의해 접수되었다. 그러나 이들 나라 중에 대다수가 그들의 군대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매우 조심스러웠다. - 각기 확립된 개입에 대한 다른 법칙들 그리고 그들을 위해 특정한 장소를 고집하는 것(흔히 가장 안전한 장소였던 카불이 선호되었다). 그리고 지금 실제로 각 국가들에서는 군대를 유지할지 말지에 대해서 활발한 정치적 토론이 있다.
그래서, 탈리반은 돌아왔고 유지되고 있다. NISAF는 아마 길게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이었던 세속적 근대화주의자들이 재출현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정말로 천사가 서구 세계를 내려다보며, "아주 잘 했어"하며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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