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 A. 하이에크, 『법, 입법 그리고 자유 1』, 제1장 「이성과 진화」.

구성주의적 합리주의를 완전하게 표현한 사상가는 데카르트라 할 수 있다. ‘방법적 회의’라는 그의 가공할 ‘의심’은 ‘논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모든 행동 규칙으로부터 타당성을 박탈’했다. 데카르트의 이성에 대한 맹신은 ‘일반적인 전통 · 관습 · 역사 등을 경멸’하고, ‘인간의 이성만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믿는 데까지 나아갔다. 이러한 사고는 곧 신인동형동성주의anthropomorphism적인 사고의 퇴보를 의미했고 홉스, 루소 등의 사회계약론 개념 속에서 꽃을 피웠다. 이성에 의해 논증될 수 없는 것은 단순한 의견mere opinion으로 간주되었고, ‘비이성적’이라는 용어에는 경멸적 의미가 담기게 되었다.

하이에크는 이러한 구성주의적 합리주의가 잘못된 믿음에 근거한 것이라 본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사회제도는 관습, 습관, 관행의 산물이며 발명된 것도 목적을 지닌 것이 아니다. 하이에크는 인간이 목적을 추구하기도 하지만, ‘규칙을 따르는 동물’이기도 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이러한 규칙이 이성적으로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라기보다 사고와 행동의 선별 과정에 의한 여러 세대의 산물’이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본다.

데카르트주의자들은 ‘인간이 완벽히 합리적인 행동을 하려면, 완벽한 지식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하이에크는 데카르트주의자들에게는 진리가 아닌 우리의 ‘믿음’에 의존해 사회의 행동이 이뤄지고 있다고 보고, 이를 ‘모든 사람들은 필연적, 불가항력적으로 무지하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이성의 결집체라 할 수 있는 과학에 대해서는 과학이 복잡한 형상에 이론을 적용시키려 할 때, ‘사실상의 무지factual ignorance’라는 장벽’에 부딪치게 된다고 주장했다. 과학적 지식은 어디까지나 가설에 관한 지식이며, 만약 인간이 이러한 과학을 통해서 구체적인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면 예측에 필요한 특정한 사실을 모두 다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성에 대한 맹신의 위험이나 ‘과학’이란 이름의 미신 따위는 근대성 비판 담론의 단골주제이라 익숙하다. 하이에크가 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합리주의의 ‘구성주의’적 측면에 집중하여 진화론적 비판을 제기한다. 데카르트적 합리주의가 ‘정신’을 자연으로부터 깨끗이 분리시키는데 반해, 하이에크는 정신 역시 ‘사회 환경의 산물’이라며, ‘제도 안에서 활동하고 그 제도를 변경시키는 것’이라 덧붙인다. ‘인류는 생각하기 전에 행동을 하였으며 행동하기 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경험을 통해 배운다는 것learning by doing”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말이겠다.

하이에크가 주장하는 ‘진화’란 이런 것이다. 한 집단이 규칙을 유지하는 이유는 그 규칙을 따르면 다른 집단보다 우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규칙은 ‘알려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승인된 것이 아니라 우월함을 입증하면서 진화해왔다는 것이다. 행동 규칙에는 두 가지 특성이 있는데, 하나는 행동을 통하여 규칙이 준수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규칙이 집단에게 월등한 힘을 부여하기 때문에 준수된다는 것이다. 규칙을 준수함으로써 일정한 결과를 이끌어내고자 함은 아니었다.

‘자연’과 ‘인공’의 잘못된 이분법을 넘어, 사회진화론에 대한 중대한 오해들을 넘어, 이제 진화의 개념은 ‘사회이론이 다루어야 할 복잡하지만 자연적으로 형성된 구조structure를 진화 과정의 산물로써 이해’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여전히 현대 사상에서 구성주의가 남아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하이에크는 오히려 ‘구성주의적 합리주의가 극단적 형태를 띠게 될 경우 이성에 대한 반동을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하이에크는 앞서 설명한 구성주의적 합리주의를 ‘의식적인 이성conscious reason’의 적용에 아무런 한계도 인정하지 아니한 것’이라 일축한다. 즉, 구성주의적 합리주의는 이성의 기획에 대해 무궁한 신뢰를 갖고 있는 입장이런 것이다. 구성주의적 합리론자들은 이성을 과대평가하여, 오히려 의지will를 숭배하는 환상에 빠지게 된다.

하이에크는 헤겔의 “추상성abstraction에 집착하는 견해는 자유주의liberalism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것the concrete이 항상 자유주의에 우월하며, 자유주의는 자유주의에 도전하는 투쟁에서 항상 지고 만다.”는 기술을 인용하며 인간이 끊임없이 규율의 제한을 넘어 감정이 유출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성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hubris’은 오히려 추상화를 거부하고 구체적인 것을 지배하게 만든다. 하이에크는 구성주의적 합리주의가 오히려 비합리주의와 손을 잡게 되는 패러독스를 지적하며 ‘구성construction은 결국에는 비합리적임에 틀림없는 특정 목적의 도움을 받아야만 가능한 것이라 지적한다.

2007/05/19 01:57 2007/05/19 01:57
Posted by 박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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