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나는 내 성격을 잘 모른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어떻게 하면 어떻다’는 식의 반응 양식은 대충 알지만, 일반적으로 어떤 부류에 속하는 지에 대해서는 별로 자료가 없다. 내게는 사람을 관찰하고 분류하는 그런 취미는 없기에…. 그렇다고 사람을 싫어하는건 아닌데, 어쨌든 그렇다. 사람 보는 눈이 없다고 해야되나? 어찌보면 약점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잘 꿰뚫어보는 우섭형의 능력이 부러울 때가 많다. 대체로 그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은 수긍하게 된다.

내가 속으론 은근히 소심하면서 생각이 많고 복잡한 놈이라는 걸…, 우섭형은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先위치짓기’가 강하고 결정도 빠르며, 일단 시작하고 보는 습성(이걸 우섭형은 “혼자 쭉 찢고 나간다”고 표현했다)이 있다는 것도…. 내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의 단면만 보고, 아니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맞는데…. 하여간에 세심한 우섭형의 관찰에 놀랐다. 그만큼 나에 대해 애정이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니 고맙기도 했고….

우섭형의 말대로 ‘先위치짓기’가 강하다는 것은 나의 특장점이기도 하고 동시에 단점이기도 하다. 어찌보면 뒷마무리가 약하다는 반증이다. 龍頭蛇尾. 말은 거창한데 행동은 미약하다. 예전에 비해서는 내뱉은 말에 부합하는 행동에 신경쓰긴 한다. 솔직히 ‘행동’이 늘었다기보다는 '말'을 줄인 것이긴 하지만…. 아무튼 섬세하지 못한 마무리는 여전하다.

회장 일 할 때는 마무리 관련해서 부회장 K가 도맡아줘서 너무 감사했다. 은근히 세심하게 이것저것 챙겨주는 부회장 덕에 난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었으니…, 드러나지 않게 물심양면 나를 지탱해준 셈이다. 학회 일 관련해서는 우섭형이 알게 모르게 이런 역할을 해주고 있다. 후배들 따로 만나서 챙기고 얘기 듣고…. 나는 어떻게 하면 앞으로 나갈까 고민하는 새에 함께 갈 사람들을 잘 다독여준다. 내가 흘리고 가는 것들도 다시 주워서 털어준다.

흘린다…. 나는 내 타입이 아닌 사람은 그냥 제끼는 버릇이 있다. 고의로 그러는 것도 아니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아예 않는 것도 아닌데…, 답답한 걸 잘 못 견딘다. 단도직입적으로 나한테 말을 던지지 않거나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사람에겐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사람의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꾹 참고 윤활유를 바르는 노력도 잘 못한다. ‘선동’은 강하지만 ‘설득’은 약하다. 삼고초려하는 유비는 못되는 셈이다. (그렇다고 조조나 손권 정도의 그릇이 된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말하자면 그렇다 이거다.) 그런 면에서 우섭형은 내게 큰 영향을 미쳤다. 내 단점과 나쁜 버릇을 강하게 지적하면서 내 삶에 비집고 들어왔다.

우섭형이 자꾸 나에게 ‘떠날 것’을 종용한다. 적당히 부족함을 느낄 때 떠나라고 한다. 나는 ‘結자解지’ 하고 싶다. 그리고 완전히 매듭을 완전히 풀지는 못하고 떠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대학이라는 공간이 원래 그렇다.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평생 학원투쟁을 전개할 것이 아니라면 떠날 때는 잘 아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허나, 이번에는 제대로 된 중심 이동을 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선 일단 중심이 무엇인지, 어디있는지를 알아야 한댔지? 그리고 최소한 둘 이상이 필요하고….

우섭형의 섬세함을 배우고 싶다. 그러려면 일단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많이 줄여야 하고, 힘을 온전히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예각적으로 읽어낼 수 있다. 사람의 마음, 사람과 사람 사이, 공동체 그 자체. 이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고, 특히 사람의 마음에 둔감한/둔감해지려는 나에게는 더더군다나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한 번 해보려고 한다. 신경은 더 쓰되 중심은 차츰 이동시키려 한다.

아직도 더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이 남았다는 것에 기쁘다.
2007/11/26 23:37 2007/11/26 23:37
Posted by 박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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