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나비

말 걸기 2007/12/11 00:01
불나비

불을 찾아 헤매는 불나비처럼
밤이면 밤마다 자유 그리워
하얀 꽃들을 수레에 싣고
앞만보고 걸어가는 우린 불나비

오늘의 이 고통 이 괴로움
한숨섞인 미소로 지워버리고
하늘만 바라보는 해바라기처럼
앞만보고 걸어가는 우린 불나비

오-자유여 오-기쁨이여
오-평등이여 오-평화여
내 마음은 곧 터져버릴것 같은 활화산이여
뛰는 맥박도 뜨거운 피도 모두 터져버릴 것 같애

친구야 가자 가자 자유 찾으러
다행이도 난 아직 젊은이라네
가시밭길 험난해도 나는 갈테야
푸른 하늘 넓은 들을 찾아갈테야

최도은이 부른 노래 듣기

우리 科歌였단다. ‘우린 불나비’ 부분을 ‘우린 정외과’로 개사해서 불렀다고 한다. 아마 학부제 이후로 이 과가를 부르는 전통도 끊긴 것 같다. 들어보면 참 좋은 노랫말과 가락을 지닌 노래이다. 그렇다고해도 이 노래의 정서에 공감하기 힘든 우리가 다시 이 노래를 부르는건 아무래도 우스웁다. ‘단절’의 극복이 꼭 ‘복고’에 있는 것은 아니니 너무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학부제 이후, 참 많은 것이 바뀌었다. 설령 이 노래를 다시 부른다해도 당시의 선배와는 연속성을 찾기 힘들만큼…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이제는 대학생활에서 ‘과 선배’의 영향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예전에는 ‘강의’ 이외의 시간은 온통 ‘과 선배, 동기, 후배’와 함께 보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면서 서로 왕성하게 영향을 주고 받았겠지…. 그게 꼭 긍정적인 영향만은 아니었겠지만, 덕분에 이뤄졌던 것도 많았을 것이다.

그렇게 이뤄져왔던 것 중에서 ‘조직’의 상실이 가장 뼈아프다. 소위 ‘써클’ ― 또는 ‘학회’ ― 이라 불리는 조직을 통한 ‘시각 교정’ ― ‘시각 교정’이라는 표현이 풍기는 부정적인 뉘앙스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 도 없어졌다. 그 영향으로 NL도 씨가 말랐다. 써클에서 행해지던 한국 근현대사 세미나는 민족 의식을 고취시키는 통로였다. 특수한 기능이 없이라도 ‘조직의 경험’은 정치학도에게 ‘연대의식’을 심어줬을 것이다.

이젠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주긴 커녕, 자기 앞가림 하기에도 정신없이 바쁜 그런 시대가 되었다. 도대체 누가 우리를 바쁘게 만드는가? 혹시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마땅치 않다면, 지금이야말로 자신의 ‘주체성’에 대해 물음을 던질 때이다. 자기 규명, 자기 증명에 대한 고민없이 무엇을 할 수 있으리.

2007/12/11 00:01 2007/12/11 00:01
Posted by 박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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