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대통령 후보들 간에 두 세트 ― 각각 민주당, 공화당 ― 의 토론이 진행 중이다. 이 토론들은 대개 언론인을 주최자와 질문자로 한다. 그리고 추측건대 이들 언론인들은 후보자들이 어려운 선택지를 고르도록 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들 “어려운” 선택지들은 미디어 함정media traps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것들은 때때로 심술궂다.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누구도 그 질문이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그것은 대외 정책에 관한 질문이었나? 또는 그것이 미국 대내 정책에 관한 질문이었나? 블리처와 후보자들은 그것이 대외 정책에 관한 질문이라고 가정했다. 바로 그 때, 그 질문이 파키스탄에서의 미국의 정책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 후보가 논의의 바탕을 국내 정책으로 이동시키려 했으나, 이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질문은 물론 우선적으로 미국의 대내 정책에 관한 것이다. 조지 W. 부시는 지속적으로 미국의 인권을 감소시키는데 착수해왔다. 소위 “국가 안보national security”가 이를 필요로 한다는 구실과 국가 안보가 언제나 최우선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대다수 공화당 정치인들과 대통령선거 후보자들은 열정적으로 이 입장을 받아들인다. 대다수 민주당 정치인과 대통령선거 후보자들은, 그들이 약하거나 비애국적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동의를 강요당하고 있다.
그러나 거의 어느 누구도 시사하지 않는 분명한 질문이 있다. 국가가 “안전하게 보호하려secure” 노력하는게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 질문이 명쾌하게 제기된 희귀한 상황에서, 표준적인 대답은 국가가 ― 미국이 향유하고 있고, 국가의 자부심의 근원인 ― “권리liberty”, 또는 “자유freedom” 또는 “인권human rights”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자유와 인권을 감소시켜서 자유와 인권의 “안보secure”를 추구한다는 비논리는 관심을 피하는 것처럼 보인다. 울프 블리처가 ― 심술궂다기 보다 ― 비협조적인 질문을 던졌을 때처럼 말이다. 오바마가 답한 인권과 안보의 관계가 상보적complementary이라는 얘기는 무의미하다. 논리적으로 필요한 답은 정부, 미디어, 인민이 언제나 “지키기secure” 위해 노력할 것은 자유 또는 인권이라는 것이다. 그 밖의 다른 지킬 것은 없다. 지키기 위해 노력할 대상이 “생명life”은 확실히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왜 우리가 “내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고 말한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를 미국의 문화적 영웅으로 만들었겠는가?
만약 누군가 위의 대외 정책 질문과 같이 허위-질문pseudo-question을 던진다면, 이는 마찬가지로 함정이다. 미국 정부 또는 어떤 정부가 파키스탄이나 다른 나라의 인권을 사실상 “보장secure”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만약 이들 표면상의 목적ostensible objectives을 가지고 행동에 착수한다면, 그 결과, 다른 나라들의 인권이 “보장secure”되는가?
근대 세계 체제the modern world-system 500년 역사의 분명한 답은 그러한 개입이 때때로 긍정적인 결과를 낳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어떠한 중기적인 기준에서도 말이다. 이라크 침략은 확실히 이 기초적인 관찰에 확증을 제공한다. 우리가 근대 세계 체제의 지정학을 통해 내릴 수 있는 첫번째 역사적 관찰은 강대국들이 중기적으로 자신의 열강적 지위나 이득을 보존하기 위한 이유에서만 간섭주의적 행동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사용한 레토릭 ― 인권과 국가 안보 모두 ― 은 대부분의 부분에서 공허하고, 그리고 주로 우리의 눈에 먼지를 뿌려왔다. 불운하게도, 현실을 보지 못하게 먼지를 뿌리는 전략은 단기적으로 매우 성공적이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댓글 RSS 주소 : http://amormundi.net/blog/rss/comment/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