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간디에 대한 나의 이해가 매우 피상적인 것이었음을, 그리하여 지금까지 간디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볼 기회를 스스로 포기해왔음을 고백해야겠다. 소위 ‘위인전’이라는 부류의 책들은 한 ‘인간’을 ‘위대한 인물’로 묘사하려는 사명에 벅차오른 나머지, 한 인간의 삶을 ‘과거’ 또는 ‘역사’라는 구체적 상황에 박제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위인은 자신의 비범함 때문에 평범한 독자와 유리되어 자신이 살던 시기를 쉬이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책 속의 활자活字에 갇혀 책장 속의 망자亡者가 되어버린다.
행적의 비범함이 지나치게 강조되다 보니 박제로도 모자라 신의 아들이 되어버린 예수라는 사람도 있다. 예수가 신의 아들인 이상, 그가 우리와 다르다는 점은 명백하다.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와 같아질 수 없다.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인 예수의 삶을 다시 살려는 노력은 불경不敬이다. 어찌 한낱 인간에 불과한 존재가 신의 아들과 자신을 동일시 할 수 있단 말인가? 예수를 살기를 체념한 예수敎는 저 철옹성과도 같은 교회 속으로 들어앉았다. 그들은 예수의 열린 밥상을 실천하기는 커녕 우상을 섬기지 말라한 예수를 우상으로 삼고 있다. 제2의, 제3의 예수를 교회에서 찾긴 어려울 것이다. 예수를 죽인 것은 유대인이 아니라, 성경 속의 예수를 ‘지금, 여기’로 끌어내려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예수敎라 자처하는 자들이다.
우리가 위인전이나 평전 따위를 읽는 이유는 비범함이 평범함에서 비롯, 발현한다는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서이다. 자신을 ‘대수롭지 않고 평범하다’하여, 백범白凡 또는 뭉우리돌이라 칭한 김구 선생의 『백범 일지』를 보라. 원주의 예수라 불린 장일순 선생은 살아생전 자신을 ‘좁쌀 한 알’에 불과하다며 일속자(一粟子)라 불렀다질 않는가? 간디가 자서전을 통해 유소년기의 부끄러운 과오를 솔직하게 고백했다고 해서, 그의 위대함에 흠결이 생기는가? 오히려 그 반대이다. 독자들은 평범함에서 비범함으로 나아가는 그의 삶을 좇으며, 죽은 간디를 다시 살려낼 것이다. 우리의 물레를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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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 자서전 - ![]() 마하트마 K. 간디 지음, 박선경.박현석 옮김/동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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