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나를 투명인간 보듯 해요. 내가 엘리베이터 앞 바닥을 청소하고 있다면, 마치 거기에 아무도 없는냥 나를 통과해서 엘리베이터를 타러가죠.”

―켄 로치, <빵과 장미> 중에서.

켄 로치 감독을 알게 된 것은 그의 영화 중에서 상대적으로 말랑말랑하다 할 수 있는 <빵과 장미>를 통해서이다. 이 영화는 미국으로 건너온 멕시코계 불법 이민자들의 삶과 노동을 그리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마야(Maya)는 청소 용역업체인 엔젤 클리닝 컴퍼니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게 되지만, 변변한 의료보험도 보장되지 않는 열악한 고용 환경과 어머니 같이 느껴지는 동료 직원이 단 한 번의 지각으로 강제퇴사 당하는 사건을 통해 노동조합 조직 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청소 용역 계약직 노동자는 우리 주위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나도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이들의 존재에 대해 ‘투명인간’처럼 여긴 것이 사실이다. 괜히 인사를 하고 아는 척을 하면, 피차 불편해질 것이라는 비겁한 생각을 했다. 그러나 영화를 본 뒤부터는 학교 내에서, 특히 기숙사에서 청소를 위해 땀을 흘리는 ‘어머니’들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어 인사를 건내곤 한다. 피차 불편해진다고? 그건 정말로 비겁한 생각이었다. 어머니들은 나의 인사를 정말로 반갑게 맞아주신다. “아우. 학교 가는 길이에요? 공부 열심히 해요.”

많은 이들의 좌파 이데올로그ideologue의 일관된 태도가 우파에 대한 안티테제antithese에서 성립된다고 ‘오해’한다. 마치, 좌파적 비판 이데올로기가 ‘논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선언적 입장’에서 나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정말로 이쪽 저쪽 이론의 장단점을 골고루 흡수하고 따져보면서 비판하는게 아니라 맹목적인 비판을 하는 것 같다.”고 말이다. 그러나 균형잡힌 사고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왼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양쪽 모두 존재한다. ‘계몽’의 빛을 쬐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나는 좌파 이데올로기가 우파 이데올로기에 비해서 무조건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좌파입네 우파입네 나눠서 싸워봤자 끽해야 둘다 관념론적 이데올로기에 불과함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좌파 이데올로기가 우파의 그것보다 좀 더 인간적humane이라는데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우파들 중에서 의료보험과 강제해고를 지지할 꼴통은 그리 많지 않으나, 어쨌거나 저쨌거나 종국에 가서 이들이 꺼내들게 되는 전가의 보도는 ‘효율성’이다. “일단, ‘빵’만 많이 먹을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얘기이다.

<빵과 장미>에서 계약직 노동자들이 겪게 되는 문제들 대부분은 이 ‘효율성’에서 비롯된다.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사람들을 고용하여 청소 업무를 맡기면 비효율(이라 쓰고 ‘비용’이라 읽는다)이 급증한다는 핑계로, 그 이름도 풍자적인 ‘엔젤 클리닝 컴퍼니’에 용역 외주를 준다. 물론 입찰을 통해서 용역 업체들이 출혈 경쟁을 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 정도까지가 고상하게 넥타이를 매고 볼룸에 모여 파티를 하고 있던 이 빌딩 변호사들(이 부분은 <빵과 장미>를 직접 본다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의 관심 범위이고, 그 밖의 일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 게다가 인간적인 우파들에게는 대단히 죄송한 얘기이나, 우파 이데올로기는 예의 비인간적인 상황을 설명하는데 쓰이는 개념인 ‘아웃소싱’, ‘의료보험의 민영화’, ‘노동시장 유연화’ 등에 매우 호의적이다.

혹자는 이렇게 얘기하고 싶을 것이다: “가치의 우선 순위가 다른 것 뿐이다. 우리는 다만 ‘효율성’을 보다 중요시한다.” 이 말이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곰곰이 따져보고, 깊이 생각해보지 않는다면 그 혹자는 변변찮은 관념론적 좌파 이데올로그와 다를바 없다. 아니, 오히려 도덕적으로는 더 저열하다. 기존의 주류 이데올로기에 편승한 채, 자신의 도덕관에 대한 성찰을 게을리한 것이기 때문이며 ‘나’ 이외의 타인에게 무관심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효율성’인가? 짧지 않은 성찰의 시간을 거치고도 여전히 기존의 입장을 유지하게 된다면, 앞으로는 다음과 같이 얘기하길 바란다: “나는 ‘효율성’에 대한 강조가 때론 다른 어떤 인간의 삶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럼, 나는 다시 물을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효율성인가?” 인간을 넘어서는 이윤을 위한 것이라고, 더 많은 이윤을 통한 더 많은 축적을 위한 것이라고 솔직하게 말해주길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더는 선택의 순간을 유예하지 않길 바란다. 고시에 합격해서, 기자가 되어서, 교수가 되어서, 정치인이 되어서, 그때 가서 “뭔가 하겠노라”하는 공허하고도 비겁한 변명은 집어치우자. 무엇이 미래의 당신으로 하여금 ‘말하게’ 할 것인가?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당신은 안주하게 될 것이다. ‘자리의 유지’에 더욱 급급하게 될 것이며 체제의 안녕과 계급적 이익에 부역하게 될 것이다. 대학 진학이라는 꿈을 위해 함께 해오던 노조 조직을 포기하려는 친구를 향해 마야(Maya)는 외친다: “언젠간 대학에 갈지 몰라도, 다 잃고 나면 그게 무슨 소용이야!”

奮然히 과거의 ‘나’와 단절하길 바란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그래서 바꿔야 한다고 느낀다면 그 ‘때’는 ‘지금’이다. 인간에게는 ‘빵’이, 그리고 그만큼이나 ‘장미’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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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장미 - 8점
켄 로치 감독, 엘피디아 카릴로 외 출연/엔터원
2007/09/22 00:01 2007/09/22 00:01
Posted by 박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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