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게 그렇게 단순한가? 절대 그렇지 않다. 삶이란 단선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 살아본다고 해서 명료하게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무언가를 좀 알겠다 싶을 때는 이미 은퇴할 때이고, 그렇게 되면 좀 더 과감하지 못했던 용기를 내지 못했던 과거를 후회하게 될 것이다. 정말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우리가 ‘다름’을 불편해하고 두려워하는 이유는 지금껏 애써 깔아놓은 전제를 위협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하지만 정말로 진지한 성찰을 거쳐 튼튼히 쌓아올린 축대라면, 어떤 ‘다름’의 도전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응전을 통해 더 견고해진다. 독선일까? 반증주의를 주창한 칼 포퍼도 어느 정도는 독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차라리 독선적이어라! 어설픈 박애주의자보다는 낫지 않은가? 자신의 삶의 방식을 고집하는 데 대한 독선이라면, 좋은 말로 ‘용기’라 불러줄 수도 있을 텐데, 얼마든지 좋으니 독선적이어라!

이왕 포퍼를 말한 김에, “소싯적에 맑스주의자 아니었던 사람 있나? 그런데 나이가 먹어서도 맑시스트로 산다면 그건 정말 멍청한 짓”이라던 그의 말도 도마 위에 올려보자. 다시 한 번, 삶이란 단선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늘상 자신이 지나온 과거를 얘기하면서 부풀리는 것도 모자라 엄살을 피우기 마련이다. 아, 그놈의 엄살! 변절, 변심을 어떤 식으로든 합리화하기 위한 그 죽일 놈의 엄살! “나도 한때는 그랬는데 말이야…”, 당신이 한때 그랬다는 사실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와 같은 과거를 가졌던 사람들이 끝내는 대부분 현실과 타협하여 낙오자로 자신들의 과거를 후회한다고 해서, 우리가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데 주저할 이유는 무엇인가?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고? 역사는 오히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라고 가르쳐주지 않았던가?

어쨌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없고, 살기 위해 최소한의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리하여 당연히 ‘자기 뒤치다꺼리’는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한다. 정신적 독립을 원한다면, 신체적으로 경제적으로 먼저 독립해야 한다. 섣불리 부모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선언한다면, 평생 기대 수익은 좀 낮아지겠지만 그만큼 자유로울 수 있다. 그리고 스스로 이 지구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면적, 부피만큼을 오롯이 책임진다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아뿔싸! 짜릿함의 순간은 짧고, 인생은 긴 것일까?

‘현실 vs. 이상’의 이분법은 삶의 다양한 측면을 생략한다. 이상을 좇으며 사는 사람은, 현실적인 사람보다 더 어리석은가? 다시 말해, ‘아직 어려서 뭘 모르는’ 것일까? 이 물음은 여전히 양적인 경험을 척도로 삼고 있다. 이건 결국 나이 권력으로 위에서 찍어누르는 것 이상이 되질 못한다.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를 틀어막는다. 암튼 나이 드신 어르신이 삶의 철학 얘기하실 때에는 조용히 숨죽이는 게 최선이다. 이미 삶의 바탕이 되는 사회/경제적 조건은 천지개벽 수준으로 바뀌었는데도 말이다.

“정말 이게 행복한 삶이라 확신하니?”, 이 물음에 그 누가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으랴! 다만, 우리는 용기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개척하려는 이들에게 숙연한 박수를 보낼 수 있을 뿐이다. ‘내 비록 내 앞가림에 허덕이느라 도움은 못 주지만 끝까지 응원하겠소’, 속으로 되뇔 수 있을 뿐이다. 세속적/물질적 기준에서 보면 한없이 가련하고 비참하겠지만, 정신적 성취란 어쩌면 물욕物慾과 반비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건, 정말로 고매한 정신의 승리일까 아니면 덜 익은 포도에 대한 아Q의 비열한 정신승리법에 불과한 것일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삶이란 정말로 단순한 것이 아니며 언제나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확실한 것보다 불확실한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비극은 인간의 오만함hubris 위에 똬리를 틀고 앉아 호시탐탐 우리의 뒤통수를 노린다. 그렇다고 도망갈 것인가? 살기로 결정한 이상, 담대하게 맞서는 것이 유일한 선택이다. 이런 점에서 어떤 삶을 추구하건 간에 우리는 모두 다 같이 불쌍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2008/03/26 22:54 2008/03/26 22:54
Posted by 박세희

TAG
받은 트랙백이 없고, 댓글 하나가 달렸습니다.

댓글+트랙백 RSS :: http://amormundi.net/blog/rss/response/666

트랙백 주소 :: http://amormundi.net/blog/trackback/666

트랙백 RSS :: http://amormundi.net/blog/rss/trackback/666

댓글을 달아 주세요

댓글 RSS 주소 : http://amormundi.net/blog/rss/comment/666
  1. aidster 2008/07/18 2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찍이 사는 것이 고통이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여하튼 가끔,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밖에 살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로그인][오픈아이디란?]